불조심
엥~ 사이렌이 울리고
작은 애는 거실에 앉아 뭔가를 적고 있고,
나는 거실 귀퉁이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우리집 대장은 침대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다.
그때
갑자기 스피커에서 엥~하는 사이렌이 울리더니
" 아파트에 불이 났습니다. 빨리 비상계단으로 대피하십시오."
작은 아이와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놀란 눈을 해 마주봤다.
"뭐야? ... 야, 얼른 나가자. 무서워..."
안방에서 자고 있는 남편을 흔들어 깨워
"불 났다고 대피하라는 방송 나왔어. 얼른 나가자."
"응, 뭐, 응, 뭐..." 남편은 잠이 취해 어린 아이 같다.
이때, 또 대피하라는 소리가 나온다.
"저봐. 얼른 나가래."
어찌어찌 일어나더니, 츄리닝을 면바지로
갈아 입겠다며 늑장이다.. 아직 사태파악이 안 되고 있다.
"얼른, 나가서 입자." 아기 달래듯 말했다.
"양말 신어야지..." 아이처럼 말한다.
아이고, 불이 났는데 양말은?
얼른 나가자고 재촉을 하면서...
얼른 장롱에서 양말 하나 꺼내고
오리털 잠바가 옷걸이에 걸려있길래
얼른 옆구리에 챙겼다.
남편이 오리털 잠바를 흘깃 보더니
"나, 그 옷 안 입어." 아직도 아이처럼 말한다.
불이 났다는데 .. 어느 예쁜 옷을 입으려고... ㅠㅠ
이러는 새에 나는 또 내 가방 안의 - 지갑 안의 - 현금 5만원이 생각나
일단 가방을 어깨에 울러맸다.
그리고 서랍장 위에 상품권이 눈에 들어와 손에 쥐고,
얼른 나가자고 재촉하면서 또
서랍에 비상금으로 현금 7만원 있던 것을 손에 쥐었더니 나만 한짐이다.
일단 문 밖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 된다고 '위기탈출 넘버원'에서 봤던 거 같아
비상계단으로 두 층을 내려갔는데, 남편이 이상하다고..
관리실에서 한 방송이 아니라 비상센서에서 나오는 녹음 목소리인데
혹, 아파트가 아니고 우리집에서 이상이 있으면 어쩌냐고..
들어가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상계단에 매케한 냄새도 없고 남편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아
우리는 집으로 다시 들어왔다. 집을 둘러보니 별 이상이 없는 듯 보였다.
이때 안내방송이 나왔다.
"관리소에서 안내 말씀을 드립니다. 소방점검 실시중 비상사이렌 오작동으로
불편을 드린 점 사과 말씀 드립니다. 아파트의 화재 안전에 이상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어우 놀래라. 어처구니가 없다."
웃음밖에 안 나온다.
이런 식으로 하면 곤란하다.
이솝우화의 '여우가 나타났어요.' 양치기소년.. 꼴나면 뒷감당은 어쩌려고...
'그리고... > 말ᆞ말ᆞ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극기가 좋다. (0) | 2010.04.21 |
---|---|
'껌값'의 의미를 (0) | 2010.04.19 |
재미난 경험 ^^ (0) | 2010.04.15 |
내가 다음부터 튀김 하나 봐라! (0) | 2010.04.08 |
새끼 낳는 물고기, 구피 (0) | 2010.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