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1. 박범신 신간『 당신』, 그리고 옥녀봉 - 박범신 작가와 함께하는 논산문학기행 ~

블랙이네 2015. 11. 6. 06:32

 

박범신 작가 신간 『 당신』출간

 

박범신은 『소금』 이외에도 『더러운 책상』, 『읍내떡삥이』, 『시진읍』등,

많은 작품에서 강경과 옥녀봉 일대를 주요배경으로 삼았다. 

그는 연무에서 태어나 10대와 청년기를 강경에서 보냈고, 

채산동집에서 쓴 ,『여름의 잔해』로 데뷔했으며,

일찍이 '강경은 나의 문학적 자궁이다.'라고 고백한바 있다.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을 비롯하여 다수의 문학상을 받았다.

 

♡♡♡

 

『당신』이란 소설에 운채산(채운산)이라고 나온다.

작가가 신혼생활을 하고 중고등학교 때 살던 옛집이 산 밑에 바로 있다. 

작가가 되는 『여름의 잔해』도 거기서 썼다.

 

『당신』이란 소설에 나오는운채산은 '채운산'을 거꾸로해서 운채산이라고 했고,

주호백은  최백호 노래 듣다가 백호를 거꾸로해서 호백으로 지었다.

공동묘지 앞에 폐교가 나오는데 아주 똑같지는 않고 조금 바꾼 배경이다.

 

 

 박범신 작가와 함께하는 논산문학기행

 

2015년 11월 3일(화) 오전 8시30분 ~ 오후 7시. 합정역에서 2호차 승차(차 2대로 이동/50여 명)

신간 『당신』의 출판 기념으로 박범신 작가의 집필실 '와초재'가 위치한

충청남도 논산시 일대를 탐방하는 문학기행

 

박범신 작가와 함께 옥녀봉과 관촉사 탐방 후 와초재에서 강의 듣는 시간 ~  

 

 

2호차 광고 / 김훈의 『 라면을 끓이며』 

 

 

 

 

'당신과 나의 기억'과 꽈자, 물 등 선물 받고

 

 

논산, 옥녀봉, 강경, 관촉사, 와초재

 

 

 

옥녀봉

 

 

옥녀봉

 

논산8경에 옥녀봉의 명월(明月)이 들어있다.

목욕하러 내려왔다가 다시 하늘로 가지 못한 옥황상제 딸 옥녀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옥녀봉으로 오르는 길

 

 

옥녀봉을 오르는 길에서 만난 마음에 쏙 드는 빈자리.

 

한적한 곳에 놓인 빈자리. 책을 봐도 좋을 자리,

먼 곳을 바라보며 가을을 느껴도 좋을 자리,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어도 좋을 자리.

 

 

관광버스 네비게이션의 오류로 우리 일행이 지각을...

오늘 관광가이드(?)를 자처하신 박범신 작가님이 옥녀봉에 먼저 도착. 기다리고 계셨다. ㅎ

 

 

 

 

옥녀봉 봉우리는 대동여지도에 '강경산'이라고 나와있고 해발 4,440m가 좀 넘는 작은 봉우리인데

조선의 대부분 지도에 표기 될 만큼 인문, 사회,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산이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서있는 이곳이 옥녀봉이다.

 

 

옥녀봉 전설 하나! (정통 전설)

 

옥황상제에게 옥녀라는 딸이 있는데 지상에 아름다운 곳이 있어 내려와 목욕을 하다가

성안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 되어 선녀들과 옥황상제 딸, 옥녀가 하늘로 올라가려는데

옥황상제가 내려다보니 제일 나중에 올라오는 한 선녀가 급히 서둘러서 올라오느라 

옷을 제대로 못 입고 가슴을 내 놓고 올라오더라고.

옥황상제는 그 모습이 풍기물란하다고 생각해 성에 못 들어오게 떨어뜨렸는데 자기 딸이었던 거였다.

옥황상제 딸인 옥녀는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다는 애로틱한 전설이 있다.

 

 

옥녀봉 전설 둘!

 

옥녀봉 맞은편 채운산에 채운이라는 중이 살았고, 이 봉에는 옥녀라는 처녀가 살았다.

중과 옥녀 둘이 사랑했다. 처녀와 중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어 옥녀는 이쪽 봉에 앉았고,

채운이라는 중은 부처님을 등지고 산꼭대기에 앉아서  맨날 바라본다는 전설.

 

 

 

옥녀봉 봉수대

 

 

 

옥녀봉 봉수대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142)

 

 

옥녀봉의 옛 이름은 강경산이었다.

금강물 감돌아 흐르는 강 언덕에 자리한 강경산은 예부터 풍치가 아름다웠고

그 산정에는 수운정이라 부르는 정자와 함께 봉수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봉수란?  높은 산 정상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나라에 큰 일이 날 때마다 밤에는 봉(횃불), 낮에는 수(연기)를 피워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방법이었다.

이 통신 방법은 고려 의종 때부터인데 조선 세종대에 와서 정식으로 체제가 갖추어졌다.

 

강경 옥녀봉 봉수대는 직봉이 아닌 간봉으로 이웃 익산군 용안면 공두원산의 봉수를 받아,

황화산성, 노성으로 연락했고, 노성 봉수대는 북쪽 공주군 월성산 봉수대로 전했다.

 

 

 

 

 

 

 

기독교한국침례회 국내 최초 예배지 

 (논산 강경읍 북옥리 137번지/향토유적 제 38호)

 

 

조선시대 말기 강경과 인천을 배 타고 오가며 포목장사를 하던 지병석 집사의 가택이다.

그는 1895년 미국 보스톤의 침례교단에서 파송한 파울링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는다.

1896년 2월 9일(일)에 이곳에서 5명(파울링 선교사 내외, 아만다 가데린 선교사, 지병석 집사 내외)은 첫 주일예배를 드린다.

그래서 이곳은 침례교 국내 최최의 예배지가 되었고, 기독교 한국침례회가 태동한 곳이다. 

이곳이 '강경침례교회'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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